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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아름다움 사이: 파올로 소렌티노의 '더 그레이트 뷰티'에 관한 사색 로마의 황금빛 햇살이 테라스를 비추고, 65세의 젭 간타렐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한때 위대한 소설가였으나, 지금은 상류층 파티의 단골손님이자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살아가고 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는 이 주인공의 공허한 눈을 통해 현대 로마의 화려함과 퇴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첫 장면부터 관객을 사로잡는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감각적 경험의 연속이다. 소렌티노 감독의 카메라는 마치 로마의 영혼을 해부하듯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화려한 파티에서 춤추는 상류층의 모습, 고대 건축물들의 웅장한 자태, 티베르 강가의 황혼, 그리고 빈 거.. 2025. 4. 3.
토리노의 말 (Turin Horse) 감상문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토리노의 말'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철학자 니체가 토리노에서 말을 때리는 마부를 보고 말을 안고 울었다는 일화에서 시작하여, 그 말과 마부의 삶을 6일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침묵 속에 담긴 삶의 무게'토리노의 말'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대사의 희소성이다. 영화는 대부분 침묵 속에서 진행되며, 인물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길고 정적인 쇼트로 담아낸다. 마부와 그의 딸이 감자를 먹는 장면, 옷을 입고 벗는 장면, 물을 긷는 장면 등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이 단조로운 반복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안에서 삶의 본질적인 리듬과 무게를 발견하게 된다.특히 영화의 초반부.. 2025. 4. 3.
복수와 영화의 힘: '바스트즈: 거친 녀석들' 감상문 퀸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트즈: 거친 녀석들'은 처음 영화관 스크린에서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타란티노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영화를 넘어서 영화 자체가 가진 힘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쪽은 유대인 출신 미국 군인들로 구성된 '바스트즈' 부대와 그들의 리더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의 나치 사냥이며, 다른 한쪽은 부모님을 잃고 파리에서 영화관을 운영하게 된 유대인 소녀 쇼샤나(멜라니 로랑)의 복수 계획이다. 두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히틀러와 나치 고위층이 참석하는 영화 시사회에서 교차하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로 이어진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 실.. 2025. 4. 2.
미지의 존재가 들려주는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 '언더 더 스킨' 감상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은 단순한 SF 영화를 넘어서 존재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가 인간 남성들을 유혹하고 사냥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여정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됨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여정으로 발전한다.   침묵 속에서 더 강렬해지는 서사'언더 더 스킨'은 대화가 극도로 제한된 영화다. 주인공인 외계 생명체는 사냥을 위한 목적으로만 말을 하며, 그마저도 최소한의 대화만 나눈다. 이런 침묵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주변 환경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글레이저 감독은 이러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스코틀랜드의 흐린 하늘과 비에 젖은 거리, 그리고 .. 2025. 4. 2.
시간의 미로를 헤매는 예술가의 초상 - '징후와 세기' 홍상수 감독의 '징후와 세기'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일상의 대화와 만남 속에서 인간 실존의 깊은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각 파트는 서로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펼쳐지지만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가며 영화와 함께 호흡하게 된다.  시간의 중첩과 기억의 왜곡영화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한 젊은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어색함을 느낀다. 그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카페에서의 만남, 술자리, 우연한 조우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의 층위가 중첩되며 현실과 기억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두 번째 파트에서는 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 2025. 4. 2.
"폭력의 역사" 감상문 인간의 본성과 폭력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 "폭력의 역사"는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폭력이 어떻게 세대를 거쳐 전해지고,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사의 구조와 시간성영화는 여러 시간대를 넘나들며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이 어떻게 유산처럼 대물림되는지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편집 기법은 폭력의 순환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겪은 가정 내 폭력과 성인이 된 후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폭력적 행동 패턴이 평행선처럼 진행되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감독은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여파와 심리적 상흔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 2025.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