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4

무한한 순환 속에 담긴 인간의 본질: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감상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사찰,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과 자연의 순환을 아름답게 그려낸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한국 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철학적 우화입니다.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삶영화는 제목 그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계절의 순환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순환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인간 삶의 주기를 상징합니다. 어린 소년이 스님의 가르침 아래 자라나고(봄), 청년이 되어 욕망에 눈을 뜨며(여름), 그 욕망이 가져온 파국을 경험하고(가을), 속죄와 깨달음을 얻은 후(겨울), 마침내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는(다시 봄) 모습은 인간 존재의.. 2025. 4. 3.
피쉬 탱크(Fish Tank): 억압된 열망과 성장통의 날카로운 초상화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피쉬 탱크'는 영국 에식스 지역의 서민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15세 소녀 미아(케이티 자비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미아의 시선을 통해 계급, 꿈, 욕망, 그리고 성장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좁은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미아는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갇힌 영혼의 춤미아는 춤을 사랑한다. 그녀에게 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표현 방식이다. 버려진 아파트에서 혼자 춤을 출 때만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아놀드 감독은 미아의 춤 장면을 포착할 때 특유의 밀착된 카메라워크로 그녀의 내면 에너지와 분노, 열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춤은 미아가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언어이며, 그녀의 .. 2025. 4. 3.
허무와 아름다움 사이: 파올로 소렌티노의 '더 그레이트 뷰티'에 관한 사색 로마의 황금빛 햇살이 테라스를 비추고, 65세의 젭 간타렐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한때 위대한 소설가였으나, 지금은 상류층 파티의 단골손님이자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살아가고 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는 이 주인공의 공허한 눈을 통해 현대 로마의 화려함과 퇴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첫 장면부터 관객을 사로잡는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감각적 경험의 연속이다. 소렌티노 감독의 카메라는 마치 로마의 영혼을 해부하듯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화려한 파티에서 춤추는 상류층의 모습, 고대 건축물들의 웅장한 자태, 티베르 강가의 황혼, 그리고 빈 거.. 2025. 4. 3.
토리노의 말 (Turin Horse) 감상문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토리노의 말'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철학자 니체가 토리노에서 말을 때리는 마부를 보고 말을 안고 울었다는 일화에서 시작하여, 그 말과 마부의 삶을 6일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침묵 속에 담긴 삶의 무게'토리노의 말'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대사의 희소성이다. 영화는 대부분 침묵 속에서 진행되며, 인물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길고 정적인 쇼트로 담아낸다. 마부와 그의 딸이 감자를 먹는 장면, 옷을 입고 벗는 장면, 물을 긷는 장면 등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이 단조로운 반복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안에서 삶의 본질적인 리듬과 무게를 발견하게 된다.특히 영화의 초반부.. 2025. 4. 3.
복수와 영화의 힘: '바스트즈: 거친 녀석들' 감상문 퀸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트즈: 거친 녀석들'은 처음 영화관 스크린에서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타란티노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영화를 넘어서 영화 자체가 가진 힘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쪽은 유대인 출신 미국 군인들로 구성된 '바스트즈' 부대와 그들의 리더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의 나치 사냥이며, 다른 한쪽은 부모님을 잃고 파리에서 영화관을 운영하게 된 유대인 소녀 쇼샤나(멜라니 로랑)의 복수 계획이다. 두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히틀러와 나치 고위층이 참석하는 영화 시사회에서 교차하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로 이어진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 실.. 2025. 4. 2.
미지의 존재가 들려주는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 '언더 더 스킨' 감상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은 단순한 SF 영화를 넘어서 존재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가 인간 남성들을 유혹하고 사냥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여정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됨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여정으로 발전한다.   침묵 속에서 더 강렬해지는 서사'언더 더 스킨'은 대화가 극도로 제한된 영화다. 주인공인 외계 생명체는 사냥을 위한 목적으로만 말을 하며, 그마저도 최소한의 대화만 나눈다. 이런 침묵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주변 환경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글레이저 감독은 이러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스코틀랜드의 흐린 하늘과 비에 젖은 거리, 그리고 .. 2025.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