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비겁함과 영웅 사이 —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감상문

by info8693 2025. 4. 21.
반응형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되길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기억될지는 선택할 수 없다.


서부의 전설, 무법자 제시 제임스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낭만적인 범죄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강도이자 도망자이며, 동시에 시대의 피해자이자 반항자다. 하지만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은 그 영웅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삶의 끝자락을 조용히 따라가며, 한 남자의 몰락과 또 다른 남자의 환상 깨짐을 정교하게 해체한다.

이 영화는 제시 제임스보다, 그를 죽인 인물인 ‘로버트 포드’의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남자가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숭배하고, 질투하다 끝내 죽이는 이야기다. 복잡하고 무겁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무게를 견디는 정적과 긴 호흡을 가지고 있다.


 

 

🕰️ 침묵의 서부, 말 없는 공기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형적인 서부극의 박진감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서사보다는, 총을 쥔 손의 떨림과, 말없이 응시하는 눈빛, 뒤돌아보지 못하는 발걸음을 집요하게 잡아낸다. 화면은 자주 흐릿하고, 햇살은 눈부시고, 그늘은 깊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손길이 더해진 영상미는 마치 한 편의 유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실'의 서부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혹은 환상 속에서 멀어져가는 전설의 장면들이다.

그 속에서 제시 제임스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기보다, 점점 자신이 아닌 어떤 ‘아이콘’으로 변해간다. 그는 불안에 떨고, 의심하고, 말없이 사람을 시험한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로버트 포드의 눈동자 — 동경, 분노, 욕망

로버트 포드는 어린 시절부터 제시 제임스를 숭배해왔다. 그의 이름을 외우고, 그가 나왔던 신문기사를 오려 모았다. 그런 그가, 우연처럼 그의 곁에 다가서게 되고, 동료가 된다. 하지만 동경은 쉽게 실망으로 변한다. 자신이 생각했던 위대한 영웅은 인간적이고, 잔혹하며, 종종 초라하다.

포드는 혼란스러워진다. 자신이 닮고 싶던 존재가 자신을 조롱하고, 인정해주지 않자, 그 감정은 뒤틀린 사랑처럼 변질된다. 그가 제시를 죽인 것은 명예 때문도, 돈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의 거부에 대한 복수이자, 끝없는 열등감의 폭발이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라는 수식어는 단지 사회가 내린 판결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증명한 정체성이다. 그는 제시를 죽였지만, 그 순간부터 제시보다 더 불행한 유령이 되어버렸다.


🪞기억의 방식과 존재의 비극

영화는 이 둘의 대조를 통해 묻는다. “기억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한가?”

제시는 죽었지만 전설이 되었고, 포드는 살아남았지만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포드는 제시가 되었고 싶었지만, 그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수없이 제시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재연하면서도, 진짜 제시의 눈빛과 말을 잊지 못한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그는 점점 스스로를 소비해간다. 제시를 죽인 손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 했던 눈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 영화가 남긴 여운

이 영화는 느리다. 많은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흐르는 감정의 밀도는 결코 얕지 않다.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곱씹고, 외치는 대신 응시하며, 모든 것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만든다.

제시 제임스의 죽음은 단순한 암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가 영웅을 버리는 방식이었고, 한 소년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진짜 비겁함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 마무리하며: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은 한 시대의 끝을 그린다. 더 이상 영웅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설은 사람들을 배신한다. 하지만 그 공허한 자리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질투하고, 누군가는 죽인다.

영화가 말하는 ‘비겁함’이란 단지 겁이 많은 행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원하는 누군가가 될 수 없을 때, 끝내 그 대상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만 존재를 증명하는 것. 포드가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본다.


#비겁한로버트포드의제시제임스암살 #TheAssassinationOfJesseJames #브래드피트 #케이시애플렉 #서부영화감상문 #티스토리영화리뷰 #전설과진실 #로버트포드 #영웅의죽음 #2007영화명작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