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토마스 핀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느와르 코미디이다. 영화는 마리화나에 취해 있는 사립탐정 '닥 스포트라이트'(호아킨 피닉스)가 전 여자친구 '섀스타'(캐서린 워터스톤)의 부탁으로 그녀의 현재 연인인 부동산 재벌 '미키 울프만'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기이한 모험을 그린다.
안개 속의 서사, 의도된 혼란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이야기의 복잡성과 모호함이다. 플롯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되며,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새로운 미스터리가 계속해서 추가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내러티브는 마치 주인공 닥이 항상 마리화나에 취해 있는 것처럼, 관객을 일종의 '취한' 상태로 이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사건의 진상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점차 깨달은 것은, 이 혼란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라는 점이다. 영화는 70년대 히피 문화의 약물에 취한 의식 상태를 구현하며, 동시에 전통적인 느와르 장르의 복잡한 플롯을 오마주한다.
환상적인 연기 앙상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항상 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놀라운 직감과 통찰력을 발휘하는 닥 스포트라이트를 그는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그의 혼란스러운 표정, 어색한 제스처, 그리고 때때로 번뜩이는 명석함은 이 기묘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조시 브롤린이 연기한 '빅풋' 비요른슨 형사 역시 인상적이다. 완고하고 폭력적이면서도 어딘가 매력적인 이 캐릭터는 닥과의 기묘한 관계를 통해 영화에 또 다른 층위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그가 팬케이크를 집착적으로 먹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묘한 코미디를 선사한다.
그 외에도 레이나 킹, 캐서린 워터스톤, 오웬 윌슨, 베네치아 스콧, 홍차오, 마틴 쇼트 등 수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 있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현해내며 영화의 기이한 세계관을 완성한다.
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재현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점이다. 의상, 세트 디자인, 음악, 그리고 전체적인 영화의 톤은 히피 문화가 쇠퇴하고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특히 로버트 엘스윗의 시네마토그래피는 이 시대의 독특한 질감과 색감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흐릿하고 부드러운 조명, 따뜻한 색조의 장면들은 70년대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영상미는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코미디와 느와르의 교묘한 조화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전통적인 느와르 장르의 많은 요소—복잡한 플롯, 그림자가 드리운 로스앤젤레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 부패한 권력—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코믹하고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닥 스포트라이트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패러디 버전으로, 그의 혼란스럽고 얼떨떨한 행동은 전통적인 느와르 주인공의 냉소적인 원숙함과 대조된다.
이러한 장르적 혼합은 때로는 기발한 코미디로, 때로는 불안한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특히 닥과 빅풋 형사 사이의 기묘한 관계, 덴티스트 마자모의 황당한 에피소드, 그리고 갑작스러운 폭력 장면 등은 관객에게 예측 불가능한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선사한다.
상실과 노스탤지어에 관한 이야기
표면적으로는 복잡한 범죄 수사를 다루는 것 같지만,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핵심 주제는 사실 상실과 노스탤지어에 관한 것이다. 닥이 전 여자친구 섀스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영화는 60년대 히피 문화의 낙관주의와 순수함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70년대 초반은 60년대의 이상주의가 무너지고 시니컬한 현실주의가 자리 잡는 과도기였다. 찰스 맨슨 사건,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은 미국인들의 낙관적인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었고, 이 영화는 그 혼란스러운 시대정신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닥의 개인적인 상실감은 더 넓은 문화적, 사회적 상실의 은유로 확장된다.
결론: 해소되지 않는 미스터리의 아름다움
영화의 끝에서도 많은 질문들은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누가 진짜 범인이었는지, 골든 팽이란 무엇이었는지, 아리엘라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등 수많은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이것이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 영화는 명확한 답보다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작품이다.
마치 닥 스포트라이트처럼, 관객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가며 단서들을 모으고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라진 시대, 사라진 사랑, 그리고 사라진 순수함에 대한 아름답고 쓸쓸한 명상에 빠져들게 된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시간과 기억, 상실과 노스탤지어에 관한 심오한 예술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매력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