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은 태국의 무더운 열대 지방을 배경으로 사랑과 욕망, 그리고 인간의 원시적 본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두 개의 뚜렷한 이야기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정서적 여정을 그려낸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군인 캥과 시골 청년 통의 사랑이 자라나는 과정을,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정글에서 호랑이 정령을 추적하는 군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두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듯하지만, 실상은 사랑의 본질과 인간 내면의 야생성에 대한 하나의 우화로 읽힌다.

영화의 전반부는 캥과 통의 달콤하면서도 어색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그들의 관계는 순수하면서도 은유적이다. 감독은 이들의 관계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려나간다. 시골 마을에서의 일상, 음식을 나누는 소소한 행복, 자전거를 타고 함께 가는 길,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성장을 보여준다. 특히 개와 함께 있는 장면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우리 내면에 잠재된 야생성을 암시한다.
영화의 시각적 표현은 태국의 시골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무더운 낮의 햇살, 습한 공기 속에서 반짝이는 빛, 그리고 밤의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감정들. 감독은 이러한 자연 환경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로 활용한다. 특히 첫 번째 파트의 마지막, 통이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캥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자 영화의 핵심 메타포다.
영화의 후반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정글에서 호랑이 정령을 추적하는 군인의 여정은 첫 번째 이야기의 사실적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신화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 태국의 민간 설화와 샤머니즘적 요소를 도입하여, 인간 내면의 원시적 욕망과 두려움을 탐구한다. 정글은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깊은 층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호랑이 정령을 추적하는 과정은 사실상 자신의 내면,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는 여정이다. 군인이 정글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는 점점 더 원시적 본능과 가까워진다. 이는 인간이 사회화 과정에서 억압해온 본능적 측면, 즉 '야수성'을 마주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추적자와 피추적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결국 누가 누구를 쫓고 있는 것인지, 사냥꾼과 사냥감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영화의 두 파트가 연결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첫 번째 파트의 사랑 이야기와 두 번째 파트의 정령 추적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연결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두 이야기는 모두 '욕망'과 '추구'에 관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냥이라는 행위는 모두 대상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집착을 수반한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주인공은 무언가를 갈망하고, 추적하고, 그것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제목 '열대병'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열대 지방의 질병일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병'일 수도 있으며,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과 욕망은 때로 질병처럼 인간을 사로잡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원시적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아피찻퐁 감독 특유의 느린 템포와 시적인 영상 언어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카메라는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보다는 그들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 존재가 놓인 공간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영화와는 다른 관람 경험을 요구한다. 관객은 스토리를 '이해'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열대병'은 결코 쉬운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명확한 결말이나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문명과 야생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 영화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단일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찾도록 초대한다.
결국 '열대병'은 사랑과 욕망의 원시성,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존재에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에 대한 시적인 탐구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문명화되었든, 우리 내면에는 여전히 야생의 본능과 욕망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때로는 그 야생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의 일부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호랑이와 군인이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대립의 순간이면서도 인정과 화해의 순간이기도 하다. 사냥꾼과 사냥감, 인간과 야수, 문명과 야생 - 이 모든 이분법적 대립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우리는 아마도 사랑의 본질, 우리 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