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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인간의 존엄

by info8693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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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은 헝가리 감독 라슬로 네메시의 데뷔작이자, 201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며, 제88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걸작이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한 남자의 고요한 외침을 담고 있다.

 

 

주인공 사울 아우스랜더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조직한 특수 부대인 ‘존더코만도’의 일원이다. 그는 동료 유대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반복되는 죽음의 현장에서 감정을 철저히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가스실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 소년의 시신을 발견한 그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유대식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필사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이 장례는 그에게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지막 남은 최소한의 윤리이자 구원이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촬영 기법이다. 감독은 4:3의 좁은 화면비와 얕은 심도를 활용해, 대부분의 장면을 사울의 어깨 뒤에서 따라가는 방식으로 담아냈다. 덕분에 관객은 사울과 함께 걷고, 숨 쉬고, 두려워하며 수용소를 체험하게 된다. 배경은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처참한 광경은 대부분 소리로만 전달된다. 이로 인해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죽음은 상상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 영화는 대사가 극히 적고,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침묵과 소음이 반복되는 이 비정한 리듬은 수용소의 공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정서적인 고통을 더욱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특히 사울이 아무 말 없이 고집스럽게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모습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관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조차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 아이의 시신을 위한 유대교 라비를 찾고, 무덤을 마련하고, 기도를 올릴 공간을 찾는다. 누군가는 그의 행동을 광기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이다.

 

‘사울의 아들’은 단순한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집단 학살의 역사적 참상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울은 그 어떤 영웅도 아니며, 그의 행동은 구조적 저항도 아니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사람답게’ 대하려 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효율성과 결과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사울의 아들’은 그런 시대에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단지 전쟁과 죽음의 현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과연 작은 존엄을 위해 무엇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작품은 쉽고 편한 관람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관람만으로도, 인간과 역사, 윤리와 생존에 대해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 한 구석에 차오르는 먹먹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그 침묵은 오히려 더욱 큰 울림으로 남는다.

‘사울의 아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하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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