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07년 작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한 영화가 아닌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영혼에 대한 탐구이자, 한 인간의 타락에 관한 서사시다.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압도적인 연기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연출이 만나 21세기 가장 강렬한 영화적 경험 중 하나를 탄생시켰다.
검은 황금에 대한 탐욕의 서사
영화는 1898년, 캘리포니아의 광부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루이스)가 기름을 찾아 구멍을 파다 다리가 부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은을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며 광산 사무실까지 기어간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약 15분 동안 대사 없이 진행되며, 플레인뷰의 비인간적 의지력과 욕망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이야기는 1911년으로 건너뛰어, 이제는 성공한 석유 사업가가 된 플레인뷰가 자신의 '아들' H.W.와 함께 새로운 석유 매장지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그린다. 그는 폴 선데이라는 소년의 정보를 바탕으로 리틀 보스턴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풍부한 석유 매장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폴의 쌍둥이 형제인 일라이 선데이(폴 대노)와 만나게 되고, 이들의 관계는 영화의 중심 축을 형성한다.
신과 자본의 대결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표면적으로는 석유 사업가의 성공과 몰락을 그린 이야기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미국 역사의 두 가지 강력한 흐름—무자비한 자본주의와 광신적 종교—의 충돌을 탐구한다.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데이는 각각 이 두 가지 힘을 상징하며, 그들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대립을 넘어 미국의 영혼을 두고 벌이는 싸움의 성격을 띤다.
플레인뷰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의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가족'마저 도구로 사용한다. 반면 일라이는 '제3의 계시 교회'의 목사로, 종교적 열정과 함께 자신만의 권력욕을 품고 있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지배에 대한 비슷한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압도적인 연기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다니엘 플레인뷰 연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연기로, 캐릭터의 복잡한 심리와 점진적인 도덕적 타락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괴물 같아지는 플레인뷰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이상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데이-루이스는 특유의 저음 목소리와 완벽하게 계산된 신체 언어를 통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눈빛에서는 욕망, 증오, 불신, 그리고 간혹 드러나는 취약함까지 읽을 수 있다. 특히 영화의 중반부에서 가짜 형제 헨리에게 보여주는 희귀한 감정적 개방성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폭발적인 광기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의 넓이를 보여준다.
폴 대노 역시 일라이 선데이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종교적 열정과 개인적 약점, 그리고 숨겨진 야망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데이-루이스의 압도적인 존재감 속에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굳건히 구축해낸다.
감각적인 시청각적 표현
로버트 엘스윗의 촬영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다. 광활한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포착한 롱 샷에서부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클로즈업까지, 모든 프레임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다. 특히 석유가 폭발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 중 하나로,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니 그린우드의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적인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스코어는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를 통해 다니엘 플레인뷰의 내면적 혼란과 점증하는 광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들리는 불안한 현악기 소리는 앞으로 펼쳐질 어둡고 불안정한 여정을 예고한다.
성경적 주제와 상징
영화의 제목인 '데어 윌 비 블러드(피가 있으리라)'는 출애굽기의 구절을 연상시키며, 영화 전체에 걸쳐 성경적 주제와 상징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일종의 반(反)모세 같은 인물로, 약속의 땅을 발견하지만 그곳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 그가 석유를 발견하는 장면들은 마치 대지에 상처를 내고 그 피(석유)를 빨아들이는 뱀파이어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일라이 선데이 역시 성경적 인물의 패러디로 볼 수 있다.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키우려는 인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니엘에게 굴욕당하고 살해당하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왜곡된 세례 의식처럼 보인다. "I drink your milkshake!(나는 네 밀크셰이크를 마신다!)"라는 다니엘의 유명한 대사는 성찬식의 그로테스크한 패러디로 해석될 수 있다.
가족과 고립의 주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또한 가족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외견상 아들 H.W.에 대한 애정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즈니스 도구로 사용한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라고 고백하는 그는 깊은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진정한 유대감을 느꼈던 가짜 형제 헨리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불신과 고립을 드러낸다.
H.W.가 사고로 청각을 잃은 후 다니엘이 보이는 반응 역시 그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그는 아들을 돌보기보다는 그를 멀리 보내버리고, 나중에 H.W.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는 잔인한 말로 상처를 준다. 이러한 가족 관계의 파괴는 플레인뷰의 내면적 황폐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성공이 어떤 인간적 비용을 치르며 이루어졌는지를 말해준다.
미국의 역사와 신화에 대한 성찰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미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석유 산업의 부상을 배경으로, 미국적 성공 신화의 어두운 이면을 탐구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일종의 왜곡된 셀프메이드맨으로, 그의 성공은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배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는 미국 자본주의의 초기 역사가 어떻게 폭력과 약탈로 얼룩져 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신화적, 상징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데이의 대결은 미국의 두 가지 강력한 힘—무자비한 자본주의와 광신적 종교—간의 역사적 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자본이 종교를 철저히 굴복시키는 암울한 승리로 끝난다.
결론: 욕망과 타락의 대서사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인간 욕망의 어두운 측면과 그것이 가져오는 도덕적, 영적 타락에 관한 강렬한 탐구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여정은 성공과 부를 향한 무자비한 추구가 어떻게 한 인간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결국 괴물로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볼링장에서 모든 것을 성취했지만, 완전히 혼자인 채로 바닥에 누워있다. "I'm finished(나는 끝났다)"라는 그의 마지막 대사는 단순히 일라이 살해를 완수했다는 의미를 넘어, 그의 인간성이 완전히 소진되었음을 암시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통해 에드워드 루이스의 소설 '오일!'을 자유롭게 각색하며, 우나칸 싱클레어의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우아하고 시적인 비전을 창조해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한 역사적 드라마나 캐릭터 연구를 넘어, 미국의 영혼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에 관한 위대한 서사시로 남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성공과 부가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깊이 타락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번영이 어떤 도덕적, 인간적 비용을 치루며 이루어졌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영화가 개봉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것이 바로 '데어 윌 비 블러드'가 현대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