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의 어두운 역사를 마주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참여했던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영화 장면으로 재연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넘어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탐구합니다.
파격적인 접근 방식
일반적인 역사 다큐멘터리와 달리, '액트 오브 킬링'은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가해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주인공인 안와르 콩고와 그의 동료들은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수십만 명을 살해한 민병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들의 행위에 대한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살인 행위를 좋아하는 영화 장르(갱스터 영화, 서부극, 뮤지컬 등)의 스타일로 재연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이 파격적인 접근 방식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지만, 동시에 가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통로를 제공합니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
영화 속에서 안와르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잔혹한 행위를 재연하면서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하며, 때로는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일을 모방하면서, 실제 역사적 사건을 엔터테인먼트로 변형시킵니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동시에 역사적 트라우마가 어떻게 문화적으로 소비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안와르가 자신의 행위를 점차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당당하게 살인 방법을 설명하던 그가 자신이 연기한 장면들을 보면서 점차 괴로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가해자의 양심과 트라우마를 탐구하는 심리적 여정으로 발전함을 보여줍니다.
불편한 진실과 사회적 책임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히 과거의 잔혹한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현재 인도네시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속 가해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범죄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그들의 행위는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교육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집단적 기억과 역사적 트라우마가 어떻게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진실을 직면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도 보여줍니다.
영화적 완성도와 윤리적 질문
'액트 오브 킬링'은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실제 역사적 사건과 재연된 장면, 그리고 그 재연을 지켜보는 가해자들의 반응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여러 층위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관객들에게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또한 많은 윤리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가해자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재연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피해자들에 대한 존중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관객들이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결론: 기억의 중요성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집단적 기억과 역사적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과거의 잘못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동시에 인간의 잔혹함과 자기 기만, 그리고 그 속에서도 가능한 변화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끔찍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액트 오브 킬링'은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 기억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불편하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담고 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화해와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도네시아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모든 사회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메시지입니다.